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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올림픽에서 도쿄올림픽으로 보내는 편지] 7월 22일, 그들을 넘어선 손기정

  • 등록일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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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SON KEE CHUNG 손기정기념재단 SON KEE CHUNG MEMORIAL FOUNDATION NO Japan 나는 Korean 손기정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손기정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 1936년 7월 22일 떳떳하지 못한 그들의 소행들
1936년 7월 22일 NIPPON 베를린 현지... 일본팀은 손기정과 남승룡 선수 중 한명을 출전을 막기위해 올림픽 17일을 남겨두고 30Km 선발전을 치른다. 컨디션 조절을 배려하지 않은 무모한 마라톤...레이스를 강행한 결과 몸이 좋지 않았던 일본인 선수 스즈키가 도중 포기하여 탈락하게 되고 반칙으로 샛길로 달리기까지 한 시오아꾸가 3위를 하게 되어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사실 이미 올림픽 출전 엔트리는 5월 21일에 마감되었었다. 멤버는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 그리고 시오아꾸로 결정 되어있었지만. 그럼에도 굳이 현지에서 선발전을 강행한 것은 조선인 선수 대신 일본인 선수를 출전시키고자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만약 손기정 선수나 남승룡 선수 둘 중의 한 선수가 최하위에 머문다면 독일과의 친분을 이용해 스즈키로 교체할 생각이었던 것!!
떳떳하지 못한 최종 선발전 또 한 번의 위기를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넘긴 두 선수 선발전에 대한 내용은 당시 일본의 어느 신문에도 실리지 않았다. 4명의 후보 선수 가운데 3명의 정식 대표가 가려지는 중요한 경기였음에도 단 한 줄의 기사로도 나가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일본인 입장에서도 이 선발전이 얼마나 떳떳하지 못했던가를 짐작케 만든다.
나는 Korean 손기정 베를린에서 손기정 선수는 시합 당일을 빼곤 일장기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유니폼을 입지 않느냐 그러다 아예 출전을 못하는 수가 있다고 하자 손기정 선수는 내가 출전 못 하면 금메달은 없다고 말했다. 나중에 우승 못하면 어쩔 뻔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럼 사상범으로 몰려 감옥 갔겠지 라고 하더라. 24세 청년이 어떻게 이렇게 위험한 일을 스스럼없이 했을까? 일장기 말소 사건이 워낙 많이 알려지다 보니 정작 베를린에서의 손기정 선수의 행적은 묻혀 너무나도 아쉽다. 총과 칼이 아닌 손기정 선수는 항상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나의 평생소원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손기정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My lifetime dream is to be remembered not as Japanese but as Korean Son Kee-Chung!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 손기정기념재단 1936 SON KEE CHUNG MEMORIAL FOUND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