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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유물

손기정의 유산, 이 달의 유물 vol. 3. 6월 - 1966년 방콕아시안게임

  • 등록일2022-06-09
  • 조회수421
손기정의 유산 이 달의 유물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단장 손기정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선수단 출정식 모습(당시 대한체육회 회관) 1966년 제5회 방콕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다. 한국 선수단장은 손기정이었다.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선수단 출국 전 기념촬영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선수단장 선정 과정에서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가 이견이 없는 손기정이 단장이 된 것이다.
한국은 182명의 선수들이 총 14개 종목에 출전하였고, 금12개, 은14개, 동21개를 획득하여 종합 2위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선수단을 격려하는 손기정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선수단 모습
방콕 전승자기념탑에 헌화하는 손기정과 한국 선수단 방콕 전승자기념탑 앞에서 묵념하는 손기정과 한국 선수단 방콕아시안게임 선수촌에서 무궁화나무를 심는 한국선수단 방콕 아시안게임에는 아시안게임 유치사절단, 예술단, 조사단 등 약 350여 명이 선수단과 함께 했다.
주최국을 제치고 얻은 2위라는 성적과 아시안게임 유치까지(유치 이후 반납함) 한국 선수단은 눈부신 성과를 얻었지만 한편으로 녹록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1966년 방콕아시안 게임 선수단 운영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인터뷰를 하는 손기정 선수
월간 손기정기념관 유물 소식지 Vol. 3 2022년 손기정 탄생 110주년 기념의 해 방콕아시안게임 선수단, 유치사절단,조사단등의 인사들을 총괄하는 '행정책임본부'가 선수단의 상부기관으로 행세하며 알력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기정기념관 소장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귀국 후 김포공항에서 MBC기자와 인터뷰하는손기정 선수 대회 일정동안 일일이 간섭을 당한손기정은 단장으로서 몹시 괴로워했다. 단장의 승인 없이 비용이 지출되기도 했다. 행정본부의 지시만을 따르는 비서를 해임하기도 하며 반발했지만 계속된 선수단, 행정본부의 의견 충돌과 분열은 결국 코치들이 연판장까지 들어 문제가 심각해졌다.
월간 손기정기념관 유물 소식지 Vol. 3 2022년 손기정 탄생 110주년 기념의 해 대한체육T KOREA 손기정기념관 소장 OBS 1966년 방콕아시안게임 선수단 운영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가진손기정 선수 손기정 단장은 귀국을 앞두고 이에 대한 반발과자조로삭발을 감행했다. 귀국 기자회견장에서 앞으로 나처럼 권력 없는사람이 단장으로 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고 밝히며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스포츠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것에 대한 목소리를 낼수있는사람은 손기정 뿐이었고 손기정은 내는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손기정의 유산 이 달의 유물 7월 9일, 1971년 전국체전의 손기정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찾아오겠습니다.